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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철학 및 인문학 이야기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나의 행복과 모두의 행복 사이, 최선의 선택은?

by 생각 발전소 2025. 8. 10.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개인의 이익과 모두의 이익이 충돌할 때, 과연 어떤 기준이 최선의 결정을 안내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 했던 인물 중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바로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입니다. 그의 사상은 단순한 철학적 논의를 넘어, 서구 사회의 법률, 정치, 경제, 그리고 윤리적 사고방식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벤담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사회 제도의 옳고 그름을 '쾌락'과 '고통'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을 통해 측정하려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료하면서도 강력한 도덕적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핵심 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의 사상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합니다. 또한 공리주의가 직면했던 비판과 한계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공리주의적 사고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다각적인 관점에서 조명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벤담이 제시한 '행복의 방정식'을 함께 풀어보며, 우리 자신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목차

제러미 벤담, 공리주의의 아버지

제러미 벤담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활동한 영국의 법학자이자 철학자, 사회 개혁가입니다. 그의 사상이 꽃피운 시기는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변동과 계몽주의의 합리적 사고가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빈부격차, 도시 문제, 낙후된 법률 체계 등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었고, 벤담은 이러한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인 도구로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기존 법률 체계의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벤담은 법이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확신했으며, 이를 위해 엄격한 논리와 체계를 갖춘 새로운 도덕 및 입법 원리를 모색했습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인 도덕 및 입법의 원리 서설(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은 이러한 그의 사상적 고민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벤담의 일생은 단순히 책상에 앉아 사변적인 철학을 논하는 것을 넘어, 감옥 개혁, 빈민법 개정, 교육 제도 개선 등 구체적인 사회 개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 했던 실천가의 삶이었습니다.

쾌락과 고통의 양면성: 벤담의 공리주의 핵심

벤담 공리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인류가 '쾌락'과 '고통'이라는 두 주인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인간 행위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도덕과 법률 또한 이러한 자연적 경향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유용성(utility)'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어떤 행위나 제도가 개인이나 공동체의 행복, 즉 쾌락을 증진시키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벤담은 쾌락과 고통이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쾌락 계산법(Felicific Calculus)'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쾌락 계산법은 쾌락과 고통의 강도(intensity), 지속성(duration), 확실성(certainty), 근접성(propinquity), 다산성(fecundity), 순수성(purity), 그리고 범위(extent)라는 일곱 가지 기준을 통해 각각의 가치를 측정하고 총합하여 가장 큰 유용성을 가져오는 행위를 선택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예상되는 쾌락과 고통의 총량을 계산하여,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큰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입니다. 이는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행위의 동기나 주관적인 의도가 아닌, 오직 그 결과가 가져오는 '효용(utility)'에 두는 결과주의적 윤리관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칙의 탄생

벤담의 공리주의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문구는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입니다. 이 원칙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 사회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을 도덕과 입법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습니다. 즉, 어떤 행위나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쾌락을 가져다주고, 가장 적은 고통을 유발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당시의 권위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민주주의와 복지 국가 사상의 씨앗을 뿌린 중요한 개념으로 평가됩니다. 벤담은 입법자들이 법률을 제정할 때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 전체의 행복 증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법률이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이익을 주지만 다수에게는 불행을 가져다준다면, 그 법률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형법 개혁에도 적용되어, 형벌의 목적을 단순히 응보가 아닌 범죄 예방과 사회 전체의 안녕 증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리주의의 역사적 맥락과 철학적 계보

벤담의 공리주의는 갑자기 등장한 사상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가 쾌락을 삶의 목적으로 보았고, 18세기 영국의 도덕 철학자들, 특히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 등은 이미 '유용성'이나 '선량함'을 도덕적 가치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벤담은 이러한 파편적인 아이디어들을 한데 모아 체계적인 윤리 이론이자 사회 개혁의 도구로서의 '공리주의'를 정립했다는 점에서 그 독창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습니다.

특히 벤담의 사상은 그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에게 계승되어 더욱 정교하게 발전했습니다. 밀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가 쾌락의 질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수용하여, 쾌락에도 고급 쾌락(지적, 도덕적 쾌락)과 저급 쾌락(육체적 쾌락)이 있음을 주장하는 '질적 공리주의'를 제시했습니다. 밀은 또한 자유와 개인의 권리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더 큰 효용을 가져다준다고 보아, 소수자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벤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밀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확장되면서, 근대 서구 사회의 지배적인 윤리 사상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공리주의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는 단순히 학문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현실 세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사상은 특히 법률 및 정치 분야에서 두드러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벤담은 법이 인간의 행동을 규율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보았으며, 모든 법률은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법 체계, 특히 형법의 목적을 응보보다는 예방과 교정, 그리고 사회 복귀에 두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벤담은 여성 참정권, 동성애자의 권리, 동물 복지 등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사회 개혁을 지지했습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칙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계층까지도 행복 계산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적 귀결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상은 이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기여하여, 정부의 역할이 국민 전체의 복리 증진에 있음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오늘날 공공 정책을 결정할 때 경제적 효율성,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 등을 통해 정책의 효과를 측정하려는 시도들은 벤담의 공리주의적 사고가 현대적으로 적용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사회적 가치를 판단하고 정책을 설계하는 데 있어 강력한 기준을 제공하며,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제시해왔습니다.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과 한계

벤담의 공리주의는 그 실용성과 명쾌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비판은 '쾌락 계산법'의 현실적인 어려움입니다. 쾌락과 고통이라는 주관적인 감각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입니다. 모든 쾌락을 동일한 척도로 측정하려는 시도는 인간 경험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간과한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더 심각한 비판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칙이 자칫 소수자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 집단의 권리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벤담이 설계한 '파놉티콘(Panopticon)' 감옥은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건축물이었지만, 동시에 감시와 통제의 상징으로 비판받았던 것처럼, 공리주의는 때로 개인의 존엄성이나 기본적인 인권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또한, 어떤 행위의 도덕성을 오직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결과주의적 특성 때문에, 행위 자체의 옳고 그름이나 동기의 순수성은 무시될 수 있습니다. 만약 거짓말이나 부당한 행위가 결과적으로 더 큰 행복을 가져온다면, 공리주의는 이를 용인할 수 있는가 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비판들은 공리주의가 갖는 현실적인 한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공리주의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선하고 다른 윤리 이론과의 대화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질적 공리주의나 규칙 공리주의 등이 그 예시이며, 이는 공리주의가 단순한 양적 계산을 넘어 정의와 권리 같은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관점과 같이 다른 철학적 관점에서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논의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접근이 될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공리주의적 사고

벤담의 공리주의는 18세기 사상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핵심 원칙은 여전히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 윤리, 자원 배분, 환경 규제, 공중 보건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제한된 의료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혹은 특정 지역에 유해 시설을 건설하여 다수에게 혜택을 주되 소수에게 피해를 줄 것인가와 같은 문제들은 공리주의적 계산과 정의의 원칙이 충돌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기업이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 사회 전체의 행복 증진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구는 공리주의적 사고와 맞닿아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고, 기업 활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평가하려는 시도들은 벤담이 꿈꾸었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실현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빅데이터 시대의 윤리적 고민과 같이 데이터 활용을 통한 사회 전체의 이익 증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도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공리주의적 딜레마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결국 공리주의는 완벽한 답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직면한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행복과 고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강력한 분석 틀을 제공합니다.

결론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료한 원칙을 통해 도덕적 판단과 사회 개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쾌락과 고통이라는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그는 법률과 제도가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비록 쾌락의 정량화 문제, 소수자 권리 침해 가능성 등 여러 비판에 직면했지만, 그의 사상은 서구 근대 사회의 발전은 물론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복잡한 윤리적, 사회적 문제 해결에 여전히 중요한 사고의 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의 행복은 과연 모두의 행복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최선의 방향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지만, 벤담이 제시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칙은 여전히 강력한 나침반 역할을 하며, 우리에게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