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속 철학 및 인문학 이야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괴로울 때, 에픽테토스의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

by 생각 발전소 2025. 7. 24.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괴로울 때, 에픽테토스의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

우리는 매일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갑니다. 갑작스러운 상사의 질책, 나를 오해하는 친구의 말 한마디, 예기치 못한 교통 체증, 혹은 간절히 원했던 기회가 무산되었을 때의 실망감. 이런 순간마다 우리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상황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지 자문하며 괴로워합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불행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듯한 무력감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사실은 아주 단순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떨까요? 약 2,000년 전, 고대 로마의 한 철학자는 이 고통의 메커니즘을 꿰뚫어 보고 우리에게 명쾌한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바로 노예 출신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핵심 사상인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의 구분을 통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부터 마음의 평온을 지켜내는 지혜를 깊이 있게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에픽테토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지혜를 외치다

에픽테토스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철학은 안락한 서재에서 탄생한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가장 혹독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벼려낸 생존의 지혜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서기 55년경, 오늘날 튀르키예 지역인 프리기아에서 노예로 태어났습니다. 로마로 팔려온 그는 네로 황제의 비서였던 에파프로디토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주인은 포악했고, 에픽테토스는 주인의 학대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한 일화에 따르면, 주인이 장난삼아 그의 다리를 비틀자 에픽테토스는 고통 속에서도 태연하게 "계속하시면 다리가 부러질 겁니다"라고 말했고, 실제로 다리가 부러지자 "거봐요, 부러질 거라고 했잖아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그의 철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자신의 신체(다리)는 타인에 의해 훼손될 수 있는 '내 것 아닌 것'이지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의지와 판단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온전한 '내 것'이라는 신념입니다.

다행히도 그는 당대 최고의 스토아 철학자였던 무소니우스 루푸스 밑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훗날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모든 철학자를 로마에서 추방했고, 에픽테토스는 그리스 북서부의 니코폴리스로 망명하여 자신의 철학 학교를 열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 아리아노스가 기록한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 편람)』과 『대화록(Discourses)』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온을 위한 핵심 원리: 통제의 이분법

에픽테토스 철학의 출발점이자 최종 목적지는 바로 '통제의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입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일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단 두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저서 『엥케이리디온』은 바로 이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달린 것과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닌 것들이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유일한 '내 것'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우리가 진정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바로 우리의 내면세계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는 우리의 판단, 의견, 욕구, 의지, 그리고 무언가를 피하려는 마음(혐오) 등입니다. 즉, 외부 사건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하는 정신적 활동 전체가 바로 '내 것'의 영역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을 때, 그가 그 말을 했다는 '사건' 자체는 내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이것은 나에 대한 끔찍한 공격이다'라고 판단하여 분노할지, 아니면 '저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표현하고 있을 뿐, 나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하여 평정심을 유지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유일한 영역입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 '내 것 아닌 것'

반대로 '내 것 아닌 것'의 목록은 훨씬 깁니다. 우리의 신체(건강, 외모), 재산, 명예, 지위, 그리고 타인의 생각과 행동,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외부 사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건강하기를 바랄 수 있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쓸 수 있지만, 경제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재산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타인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도, 그들의 마음은 내 통제권 밖에 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괴로운 이유가 바로 이 '내 것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과 집착, 그리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좌절과 분노가 모든 정신적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내 것 아닌 것'에 집착하며 괴로워하는가?

이 구분은 듣기에는 단순하지만,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내 것 아닌 것'에 매달리는 것일까요? 첫째,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외부적인 것들을 가치 있게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더 좋은 외모, 더 많은 재산,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얻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는 메시지가 만연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외부적 가치들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도록 길들여져 왔습니다.

둘째,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통제하려는 욕구를 가집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외부 환경을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평가, 나의 건강, 경제적 안정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통제권을 갈망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에픽테토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사고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그는 마치 숙련된 궁수와 같이 살라고 조언합니다. 궁수의 역할은 활을 완벽하게 당기고, 호흡을 가다듬고, 최적의 순간에 화살을 놓는 것까지입니다. 이것이 궁수가 통제할 수 있는 '내 것'입니다. 화살이 날아가는 동안 부는 바람,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 혹은 과녁의 상태는 궁수가 통제할 수 없는 '내 것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궁수는 과녁을 맞히는 '결과'에 집착하는 대신, 화살을 쏘는 '과정'의 완벽함에 집중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판단과 행동이라는 과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에픽테토스의 지혜 적용하기

그렇다면 이 고대의 지혜를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 철학은 결코 현실 도피나 무기력한 체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곳에 집중하게 만드는 매우 실용적인 전략입니다.

직장 생활에서: 상사의 부당한 평가나 동료와의 갈등으로 괴로울 때, 우리는 '그가 나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해'라고 생각하며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생각은 '내 것 아닌 것'입니다. 대신 '나는 나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나의 의견을 전문적이고 차분하게 전달한다'는 '내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나의 태도와 행동에 집중할 때, 우리는 훨씬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연인이나 친구가 내 마음을 몰라주어 서운할 때,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려 듭니다. 하지만 에픽테토스의 관점에서 이는 불가능한 시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감정을 솔직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관계의 주도권은 상대방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의 반응을 선택하는 데서 나옵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서: '좋아요' 수, 팔로워 수, 타인의 댓글은 '내 것 아닌 것'의 전형입니다. 여기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스스로를 감정의 노예로 만드는 길입니다. 대신 '나는 왜 이 콘텐츠를 공유하는가?', '나는 이를 통해 어떤 가치를 나누고 싶은가?'와 같은 '내 것'의 영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외부의 피드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기표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유를 향한 내면의 혁명

에픽테토스가 제시하는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의 구분은 단순히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소극적 태도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세계의 혼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요새를 구축하는 적극적인 정신 훈련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판단과 의지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외부 상황의 노예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평온을 얻게 됩니다.

 

물론 이 경지에 이르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매 순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지금 집착하는 것이 '내 것'인지 '내 것 아닌 것'인지를 분별하는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를 괴롭혔던 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중 당신이 통제할 수 있었던 '내 것'과, 그저 받아들여야 했던 '내 것 아닌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제 당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