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본 이타적인 삶의 가치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묻는 영원한 질문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으신가요? 부와 명예, 혹은 개인적인 성취가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될 수 있을까요?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깊고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이 글에서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깊이 있게 분석하며, 그가 역설했던 이타적인 삶의 가치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톨스토이, 문학으로 구원을 탐색하다
귀족에서 사상가로: 톨스토이의 생애와 사상적 전환
레프 톨스토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극적인 생애와 사상적 변화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크림 전쟁 참전 경험 등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에 깊이 고뇌하게 됩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대작을 통해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50대에 이르러 극심한 정신적 위기를 겪습니다.
이후 톨스토이는 모든 기성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산상수훈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폭력에 대한 무저항주의, 사유재산 부정, 금욕적인 생활 등을 주장하며 스스로 땅을 경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사상적 전환은 그의 후기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교훈적 성격이 짙은 민화풍의 소설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탄생 배경
188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일반 민중을 교화하고 자신의 기독교적 사상을 쉽게 전파하기 위해 쓴 '민화집'의 일부입니다. 그는 복잡하고 현학적인 언어가 아닌, 단순하고 소박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인간 존재의 핵심 진리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동화를 넘어, 톨스토이의 후기 사상이 응축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 세 가지 질문과 그 대답
소설은 가난한 구두장이 '세몬'이 벌거벗고 길가에 쓰러져 있는 청년 '미하일'을 집으로 데려오면서 시작됩니다. 사실 미하일은 신의 벌을 받아 인간 세상으로 쫓겨난 천사였고, 신은 그에게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알아오라는 과제를 내립니다. 이 세 가지 질문과 그 해답의 과정이 바로 소설의 핵심 줄거리입니다.
첫 번째 질문: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미하일이 얻은 첫 번째 해답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세몬은 처음 미하일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생각하며 그를 외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양심의 소리가 들려왔고, 결국 그는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한 미하일을 집으로 데려옵니다. 세몬의 아내 '마트료나' 역시 처음에는 낯선 이를 데려온 남편에게 분노하지만, 미하일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껴 마지막 남은 빵과 옷을 내어줍니다.
그 순간, 미하일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깨닫습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기심이나 두려움이 아닌, 타인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몬 부부의 행위는 거창한 희생이 아니었지만,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 속에 내재된 선의와 사랑의 힘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질문: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어느 날, 부유한 귀족이 찾아와 1년이 지나도 모양이 변치 않을 튼튼한 장화를 주문합니다. 그는 자신의 부와 건강을 과신하며 미래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미하일은 귀족의 어깨 뒤에서 죽음의 천사를 보고, 그가 주문한 장화 대신 시신에 신길 부드러운 신발을 만듭니다. 그날 밤, 귀족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 사건을 통해 미하일은 두 번째 질문의 답을 얻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육신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지식', 즉 자신의 미래를 아는 능력입니다.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이며, 내일의 일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귀족의 허망한 죽음을 통해 물질적 소유와 미래에 대한 계획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세 번째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6년의 시간이 흐른 후, 두 딸을 데리고 온 한 부인이 세몬의 집에 찾아옵니다. 그녀는 미하일이 6년 전에 만들었던 가죽 장화를 신고 있던 아이들의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어머니 역시 아이들을 낳고 곧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도 자식도 없던 이 부인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고아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으로 거두어 키웠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미하일은 마침내 마지막 질문에 대한 해답을 깨닫고 환한 빛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갑니다. 사람이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이나 계획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진리였습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웃의 이타적인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 사랑을 나눌 때 비로소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타주의: 톨스토이가 제시하는 인간 존재의 핵심
'나'를 넘어선 '우리'의 발견
결론적으로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상호 간의 사랑과 연대를 통해 살아가는 공동체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미하일이 깨달은 세 가지 진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하나의 가치로 수렴됩니다. 타인을 향한 사랑이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워지며, 그 사랑의 실천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메시지입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교리를 넘어,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통찰입니다. 나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삶은 결국 귀족의 죽음처럼 허무하게 끝날 뿐입니다. 반면, 세몬 부부나 고아들을 키운 부인처럼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풍요롭게 만듭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시 읽는 이유
경쟁과 고립의 시대, 이타적 가치의 재발견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10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되고 파편화되고 있습니다. 타인은 경쟁의 대상일 뿐, 연대의 대상으로는 쉽게 여기지 못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톨스토이의 작품은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존과 행복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건강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톨스토이는 이타적인 사랑이야말로 이기심과 물질주의로 병든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전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가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인간 존재의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에 있음을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영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이타적인 삶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삶이라는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우리는 오늘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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