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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철학 및 인문학 이야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인 이유

by 생각 발전소 2025. 7. 26.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인 이유

우리는 언제나 사랑을 갈망합니다. 영화, 드라마,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 황홀한 감정에 '빠지는' 순간을 꿈꾸죠.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격렬한 감정의 폭풍이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만약 사랑이 그런 우연한 감정이 아니라, 피아노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의식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라면 어떨까요?

20세기 최고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을 통해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그는 현대인들이 사랑에 실패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사랑을 감정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그것을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이 글에서는 프롬의 통찰을 따라, 왜 사랑이 단순한 감정을 넘어선 '기술'이며, 그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있게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시대적 배경: 왜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말했는가?

프롬이 『사랑의 기술』을 집필한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가 급격히 팽창하던 시기였습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 된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마저 시장 논리에 따라 평가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롬은 이러한 사회 구조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진정한 관계 맺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를 '시장 지향성 성격'이 지배하는 곳으로 진단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고, 더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상품으로 포장하여 '인격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기를 원했습니다. 연애나 결혼 역시 이러한 시장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의 외모,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을 따져 '가장 좋은 상품'을 획득하려는 교환 관계로 변질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고립과 소외감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접근하는 방식마저 자본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프롬이 보기에, 이것이 바로 현대인이 겪는 사랑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는 사랑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인 활동으로 재정의할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것이 『사랑의 기술』을 집필하게 된 핵심적인 동기였습니다.

'사랑받는' 문제에서 '사랑하는' 능력으로의 전환

프롬은 책의 서두에서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갖는 보편적인 오해 세 가지를 지적합니다. 이 오해를 이해하는 것은 그의 논지를 따라가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매력의 문제로 착각합니다.

사랑에 대한 보편적 오해

첫째,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에만 몰두합니다. 남성은 성공하고 부와 권력을 쌓으려 하고, 여성은 외모를 가꾸고 매력적인 몸매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이는 모두 자신을 더 가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사랑받으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둘째, 사랑의 문제를 능력의 문제가 아닌 '대상'의 문제로 봅니다. 마치 쇼핑하듯, 자신에게 꼭 맞는 '완벽한 상대'만 찾으면 사랑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상적인 상대를 찾지 못하면 쉽게 좌절하고, 관계의 어려움이 생기면 상대방이 '잘못된 대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탓합니다.

셋째, 사랑에 '빠지는' 최초의 강렬한 경험과 사랑을 '지속하는' 상태를 혼동합니다. 낯선 두 사람이 갑자기 친밀해지는 순간의 황홀경을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식게 마련이며,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 끝났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프롬의 대안: 사랑은 '하는' 것이다

프롬은 이러한 오해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사랑의 본질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즉, 사랑은 수동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발휘되는 능동적인 힘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수동적으로 빠지는 감정(falling in love)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지속하는 기술(standing in love)입니다.

그는 사랑을 하나의 '기술(Art)'이라고 명명하며, 다른 모든 기술을 배우는 과정과 똑같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목공 기술을 배우려면 먼저 이론을 숙지하고, 그다음 수많은 시간 동안 실습하며 숙달해야 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이론을 배우고, 그것을 삶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하며 연마해야만 진정한 사랑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기술을 위한 4가지 기본 요소

그렇다면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는 사랑이라는 능동적 활동이 네 가지 기본적인 요소로 구성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라도 빠지면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1. 보호 (Care)

보호는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감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화초를 사랑한다면,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등 화초가 잘 자라도록 보살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안녕과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노력하게 됩니다. 보호 없는 사랑은 공허한 말에 불과합니다.

2. 책임 (Responsibility)

책임은 상대방이 표현하거나 표현하지 않은 정신적 요구에 '응답(response)'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여기서 책임은 외부에서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전적으로 자발적인 행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필요를 나의 필요처럼 여기고, 그의 삶에 동참하려는 의지입니다. 프롬에게 책임이란 상대방의 고유한 인격 전체에 대한 책임감을 의미합니다.

3. 존경 (Respect)

존경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고, 그가 가진 고유한 개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관계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지배욕일 뿐입니다. 존경은 상대방을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보지 않고,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관심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4. 지식 (Knowledge)

상대방을 존경하기 위해서는 그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지식은 피상적인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그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두려움, 불안, 기쁨, 그리고 숨겨진 동기까지 공감하며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깊은 앎은 오직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으며, 보호, 책임, 존경의 태도가 전제될 때 가능해집니다.

성숙한 사랑의 형태와 현대적 의의

프롬은 앞서 말한 네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성숙한 사랑이란 "자신의 통합성,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상대와 합일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이러한 성숙한 사랑이 형제애, 모성애, 성애(erotic love), 자기애, 그리고 신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자기애(Self-love)'에 대한 그의 통찰입니다.

일반적으로 자기애는 이기주의와 동일시되지만, 프롬은 이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그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없이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자기애는 자신을 보호하고, 책임지며, 존경하고, 앎으로써 자기 자신을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만 타인에게도 건강한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프롬이 진단했던 것보다 훨씬 더 파편화되고 소비 중심적으로 변했습니다. 데이팅 앱을 통해 상대를 쉽게 '선택'하고, 관계가 어려워지면 미련 없이 '차단'합니다. 소셜 미디어 속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고 사랑받는 모습만을 전시하며, 진정한 연결보다는 피상적인 '좋아요'에 집착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프롬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의 철학은 사랑이 더 이상 낭만적인 신기루가 아님을 일깨워줍니다. 사랑은 인내와 훈련, 집중과 용기가 필요한 삶의 기술입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소유'의 논리를 넘어, '존재'의 방식으로 사랑할 것을 촉구하는 프롬의 목소리는 현대 사회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사랑을 신비의 영역에서 끌어내려 우리가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의 영역으로 가져왔습니다. 사랑은 단순히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라,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라는 요소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연마해야 하는 능동적인 활동입니다. 프롬은 우리에게 사랑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랑을 창조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 사랑의 기술을 익힌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을 손쉽게 얻으려는 '소비자'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고통과 노력을 감수하며 사랑을 빚어내는 '예술가'로 살고 있습니까? 프롬의 질문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