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안갯속에 선 우리, 한 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종종 짙은 안개가 낀 절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을 느낍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 안갯속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내딛는 발밑이 단단한 길일지 혹은 허공일지 알 수 없어, 두려움에 발이 얼어붙고 맙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맞을까?”, “이 사람이 정말 평생을 함께할 나의 인연일까?”, “수많은 선택지 중 어떤 것이 정답일까?”
이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확실성’을 갈망합니다.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 이 길이 정답이라는 객관적인 증거, 합리적인 데이터와 분석을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장단점을 빼곡히 적어 내려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분석해도 안개는 걷히지 않고, 100%의 확신은 결코 찾아오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선택을 미룬 채, 절벽 앞에서 주저앉아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실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바로 이 인간의 고뇌, 즉 불확실성 앞에서의 마비 상태를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교착 상태를 돌파할 유일한 방법으로, 합리적 이성의 영역을 뛰어넘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철학의 심장과도 같은 개념,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입니다.
오늘은 키르케고르의 철학을 통해, 이 ‘믿음의 도약’이 맹목적인 비합리성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열정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필연적인 행위임을 이해하고, 우리 삶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그 도약을 실천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내 삶의 관객에서 무대 위 주인공으로
1. 키르케고르가 말한 인간 실존의 3단계
‘믿음의 도약’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키르케고르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주체적인 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세 단계의 실존 양식으로 설명합니다.
- 1단계: 미학적 실존(The Aesthetic Stage) 이 단계의 인간은 삶의 ‘관객’입니다. 그는 쾌락과 즐거움,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며 권태를 피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습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진지한 관계나 약속에 얽매이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각적인 쾌락은 일시적이며, 결국 모든 것에서 권태를 느끼는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껍데기뿐인 삶에는 진정한 ‘나’가 없기 때문입니다.
- 2단계: 윤리적 실존(The Ethical Stage) 미학적 단계의 절망을 느낀 인간은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그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과 사회적 의무를 받아들이고, ‘선택과 책임’을 통해 자기 자신을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며, 성실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갑니다. 이 단계는 분명 미학적 단계보다 발전한 것이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존재합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보편 법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사랑, 신, 죽음 등) 앞에서 또 다른 ‘절망’을 마주하게 됩니다.
- 3. 종교적 실존(The Religious Stage) 윤리적 단계의 한계에 부딪힌 인간이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이성과 합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거대한 ‘부조리(Absurd)’와 마주합니다. 그리고 이 부조리 앞에서, 객관적 증거가 아닌 주관적인 열정과 믿음으로 결단하는 ‘도약’을 감행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도약’이며, 이 도약을 통해 비로소 개인은 신 앞의 단독자로서 온전한 실존을 회복하게 됩니다.
2. 절벽 앞에 선 우리 - 왜 ‘도약’이 필요한가?
우리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마비되는 이유는, 바로 ‘윤리적 실존’의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문제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어떤 선택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올지, 어떤 길이 실패 확률이 낮을지 끊임없이 계산합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인생의 가장 중대한 결정들은 결코 ‘계산’으로 증명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람의 장단점을 분석한 데이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일에 당신의 인생을 걸기로 결심할 때, 성공 확률이 100%라는 보증서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객관적인 증거와 내가 내려야 하는 주관적인 결단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 즉 절벽이 존재합니다. 이 절벽 앞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기다리며 도약을 미루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입니다. 이는 삶의 무대 위로 올라가기를 거부하고 영원히 관객으로 남겠다는 ‘미학적 실존’으로의 퇴행이며, 그 끝은 결국 공허한 절망뿐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도약’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필연적인 결단입니다.
3. ‘믿음의 도약’의 진정한 의미: 아브라함의 역설
키르케고르는 ‘믿음의 도약’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성서의 ‘아브라함 이야기’를 가장 중요한 예시로 듭니다.
신은 아브라함에게 백 살에 얻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끔찍하고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보편적인 도덕률은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기에,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을 거부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 보편적인 윤리를 ‘중지’시키고, 이성적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신의 명령을 따릅니다. 그는 합리적 세계를 떠나 신과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계 속으로 도약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도약’입니다. 그는 ‘부조리함으로 말미암아’, 즉 이성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아들을 잃어도 신 안에서 다시 되찾을 것이라 믿는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맹목적인 광신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은, 그가 윤리적 고뇌와 아들을 잃는다는 무한한 고통을 온전히 끌어안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약을 감행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둘 때, 우리는 ‘안정성’이라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평생을 약속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도 있었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확실성’을 희생하는 결단을 통해, 비로소 내 삶의 주체적인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4.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 법
그렇다면 이 철학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 1단계: 객관적 분석을 멈추는 용기 당신은 이미 충분히 고민하고 분석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정보 수집이나 주변의 조언이 당신에게 100%의 확신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데이터가 아닌, 결단이 필요한 시간임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2단계: 당신의 ‘주관적 열정’을 신뢰하기 모든 이성적 판단을 내려놓고, 당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어떤 선택지가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합니까? 어떤 길이 ‘더 나은 나’가 아닌, ‘진정한 나’를 향해 있다고 느껴집십니까? 키르케고르에게 열정은 진리의 최고 형태였습니다. 당신의 주관적 열정이야말로 도약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입니다.
-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하기 도약은 ‘만약에(What if)’라는 불안을 끊어내는 행위입니다. “이 길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아무런 보장이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길을 선택하겠다.”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과 함께 내딛는 한 걸음이 바로 당신의 위대한 ‘믿음의 도약’입니다.
- 4. 선택 이후의 책임과 헌신 도약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헌신의 시작입니다. 일단 도약한 후에는 뒤를 돌아보거나 다른 길을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나의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 되도록, 나의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입니다. 의미는 선택 이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창조됩니다.
당신의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키르케고르의 철학은 우리에게, 불확실성 앞에서 느끼는 불안이 우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실존의 증거라고 말해줍니다. 그 불안은 당신이 삶의 관객으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무대 위 주인공이 되려는 문턱에 서 있다는 신호입니다.
미래의 안개는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걷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삶은 풀어야 할 수학 문제가 아니라, 온몸으로 겪어내야 할 현실입니다.
더 이상 당신 삶의 관객석에 앉아 있지 마십시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부러워하거나 비판하며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이제 당신의 무대 위로 올라갈 시간입니다. 당신의 열정을 믿고, 불확실성이라는 심연을 향해 힘껏 도약하십시오.
당신 삶의 의미는 도약하기 전에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도약 속에서, 그리고 도약 이후의 삶을 통해 비로소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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